19)"나의 자녀들아 너희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이런 경우가 양무리를 치는 목자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까 싶다.
수고하고 애씀으로 낳은 양무리들이 이단사설의 꾐에 빠져 잘못된 열심을 낼때!
모든 목회자의 기쁨은 자신이 목양한 성도들이 진리안에서 잘 자라 하나님의 알꾼되어져 가는 것을 지켜볼 때일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죄악이나, 유혹에 빠져 진리를 떠나 잘못 된 길로 가는 성도들을 볼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저 마음 아파하며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버울사도는 "다시" 해산의 수고를 자처한다.
힘들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켰던 그 수고를 다시 하겠다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지 싶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그들을 품겠다 한다.
아마 처음보다도 더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를 힘입어 다시 돌아오게 된 성도들이 또 다시 죄악된 길이나, 이단사설에 빠지진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이전보다 더 제대로 된 열심으로 주를 섬기지 않을까?
가끔은 내가 잘못된 길을 가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그렇게 잘못 행하는 자들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가급적이면 주님 마음 안 아프시도록 잘 살아야 겠고, 혹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 행할때 '해산의 수고'를 마다않고 위하여 애쓰는 자 되고 싶다!
주님! 주님이 내게 맡긴 사람 제발 포기하지 않고 품어 사람 만들 수 있는 힘 주세요.
마치 그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