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1-11


종이 아닌 아들이 되어 아버지가 주신 사랑과 특권을 마음껏 누리라 하시는데 그러지 못하는 갈라디아 교회인들이 안타깝다. 자유케 하시려고 아들을 내어주셨는데 희생이 무색할 만큼 어리석은 속박에 스스로 몸과 마음을 묶어두고 누리지 못하는 것은 갈라디아 교회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갖은 세상 풍파에 휩싸여 하나님 안에서 누릴 있는 자유와 평안을 알면서도 누리지 못하는 교회인들이나 예수님을 알지 못해 안의 자유와 평안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교회 사람들이나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다고 말하는 나는 안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평안할까. 작은 일에도 평정을 잃고 몸을 떠는 모습이 그려져 부끄럽다.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좀더 나아야 할텐데...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할텐데... 부끄러움을 알기에 그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깨우칠 있다고 믿는다.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어도 조금씩 하나님 보시기에 뿌듯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내가 되자.


갈라디아서 4:12-20


그들을 위한 수고를 마다 하지 않았으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갈라디아인들을 안타까워한 바울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 한다. 오늘 말씀을 읽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수고를 생각해 보았다. 처음 태아났을 형체만 사람이지 혼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아이를 온갖 고생을 해가며 제대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이 빤히 눈에 보인다면? 내가 고생을 접어두고서라도 사랑하는 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고 싶을 것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을 향해 느끼는 안타까움이 정도인데 내가 엉뚱 길로 접어들었을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들을 내어주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더이상 어떤 수고와 희생을 감당하셔야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있을까. 매순간 내가 아무 대가없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숭고한 사랑과 희생으로 인해 존재하는 나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