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6장47절-56절 -
이미 사단에게 자기를 팔아 넘긴 유다의 마음은 자기것이 아니다. 그저 어두움이 저를 장악했기에 어떠한 일이라도 서슴치 않고 하게된다. 입맞춤이란 사랑과 친근함, 존중함의 표현이다. 이 표현이 예수님을 군병들에게 내어주는데 사용된다. 어떻게 이렇게 이중적인 모습으로 역겨운 행동을 할까! 라고 하지만 과연 나는 이런적이 없었나? 아니다, 무지 많다.. 시기로 질투로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처럼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유다의 입맞춤 처럼 이중적인 모습으로 사단의 종노릇을 얼마나 오래했는지 모른다. 그 습관은 꽤 질기디 질겨 아직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결단을 수도 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겉모습은 그럴듯한 믿음의 사람으로 보여지는 입맞춤으로 속이는 자가 아니라, 속 사람이 진짜가 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사랑, 존중, 신뢰를 기반으로 친근감을 표현하는 성령의 입맞춤을 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께 요청한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르실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성경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무능력 자가 되셔야만 했다. 이미 기도로 무장 되신 예수님은 칼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들에게 자신을 맡길 준비가 되어있으셨다. 그래도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칼을 들고 나선 제자가 있었다. 무리중 하나를 쳐서 귀를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지만 오히려 이 일로 책망을 받는다. 그 사람 마음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 일은 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신다. 난 그래도 이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기 감정이든 의든 만용이든 그 순간 무기를 든 자들에게 맞선 잠깐의 용기를..
3년 반을 함께 동고동락 하던 제자들이 다 도망가는 것을 이미 아셨지만 그들의 뒷 모습을 보시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한다. 모든것을 한 순간에 잃으셔야 하는 예수님은 이제 철저히 혼자가 되셨다. 이제 아무 도움자도, 함께 하는 자도 없는 외로움 속에서 고통과 수치의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셔야한다. 죽어야만 나올수 있는 곳을 저항도 없이 묵묵히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라 하시고 기도의 자리까지 이끌어 주셨던 이유를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은 기도로 무장하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따르되 죽기를 각오했지만 예수님을 버리는 배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각오를 하고 다짐을 한다 해도 인간의 한계는 두려움 앞에서 무너진다. 오직 이길 힘은 기도로 성령님의 충만하심 안에 거하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낙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된다. 내가 이렇게 작은 존재이기에 하나님 없이는 안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기도하려 애쓴다. 이렇게 하찮은 날 도우셔야 한다고.. 난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기도를 많이 한다. 이 시간 하나님은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감동으로 찾아오신다. 이때의 감격은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나를 가장 잘 아시고 그 사랑안에 깊이 머물수 있는 은혜에 나를 온전히 맡겨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