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유다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진다. 그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좋을뻔 한게 아니라 유다 자신에게 좋을뻔 했다는 말씀에서 내가 보일 수 없는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느끼게 된다. 예수를 팔고 유다에게 닥칠 화가 마음 아프심이라 생각된다. 구원받지 못할 한 제자의 운명을 보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복음을 위해 본인에게 닥칠 고통에 대한 염려가 아닌 구원에 이루지 못 할 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복음 지도자/선생으로서의 진정한 자격이 됨을 깨닫는다.

35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예수와 함께 있을때는 베드로 자신이 그의 모순된 믿음과 약함을 오히려 못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현실 믿음은 예수와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할 때가 아니라 고난 받는 예수 앞에서의 믿음이 자신의 믿음임을 그도 몰랐을 것이다. 기적을 보이고, 회중 앞에서 찬사를 받고, 선지자들을 대면하는 예수의 화려한 능력을 추앙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난 받는 약한 예수를 보며 그가 나의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할 수 있는 믿음이 진정 예수가 가르치고 보고 싶었던 믿음임을 자신의 비겁함을 통해 깨닫게 될것이다. 나의 완전치 못함/비겁함/편협함/이중성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믿음이/은혜가 무엇인지 알게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것들에 대해 내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린다. 잘 믿어왔다고 생각했고, 내가 믿는 믿음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오늘 본문에 있는 베드로의 모습처럼 예수가 말씀 하시는 믿음을 못 보였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