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화) 마태복음 27장 1-10절
* 가룟유다는 은삼십에 예수를 팔고 그 선생을 배신하였는데, 이내 뉘우치고 은을 도로 갖다주며 심한 죄책감 속에 몸부림치다 결국 스스로 목매어 죽게 된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12 제자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음모를 가지고 예수님께 접근한 것이 아니였을텐데 언제부터였을까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기기로 생각한 것이..?
눅 22:3-4, 요 13:2, 26-27에 기록되어 있듯이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고 예수께서 이를 허락하실 때 곧 뛰쳐나가 그 악한 마귀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왜 가룟유다였을까..? 요 12:4-6에 그 단서가 있지 않나싶다. 돈궤를 맡은 유다는 비싼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은 마리아를 책망하는데 이는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였다. 그는 돈을 훔치는 지속적인 죄에 노출되어 있던 자였기 때문에 사탄은 그를 잡아 사용할 수 있었다.
연약하여 실수하고 넘어지는 것이 문제라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악에게 져서 그 죄악에서 떠나지 않고 거하는 것이 문제다. (시편 1편..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 가룟유다는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다리를 깔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사탄에게 붙들려 후회할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마귀의 도구로 사용되고는 자살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되었다.
사탄은 달콤한 생각과 말로 우릴 유혹하지만,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죽음의 길로 닿게된다. 하나님의 일은 과정은 힘들어도 그 끝은 생명이다. 그러나, 사탄이 하는 일은 화려하고 좋은 것 같지만 그 끝은 죽음이다!! 가룟유다를 사탄이 휘어잡고 악한 일에 도구로 사용하고는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려 결국은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사탄은 인간을 조종해서 자신의 악을 행하는데 사용하다가 버려버린다. 절대로 상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용해먹고 죽게 만든다.
내 삶에 마귀에게 문을 열어 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짓는 죄악이 있는가 돌아본다. 절대로 그 일에 나를 가만 두지 말아야겠다. 사단에게 이용당할 순 없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주님 기뻐하시는 뜻만 행하길.. 주님의 손에 붙들려 생명을 낳고 그 길 가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것임을 소망하며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