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1-24
백세에 주신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다. 그것도 죽여서...
이해할 수 없고 말도 안되는 요구이지만 도움말에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해도 신뢰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 믿음 입니다' 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의 요구는 아브라함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 했다는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천하 만민을 살리는' 은혜를 얻었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살아감으로 나를 통해 복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나만' '내 가족만' '내 교회만' 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은 '기도' '섬김' '인내' '예배'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면 나를 통해 가정, 교회, 사회가 살아나게 된다. 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순종의 삶이 하나님을 일하게 하시니까.... 내가 죽기 싫어 몸부림 치고 불순종하고 도망가기에 살리는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여도 살리실 하나님을 신뢰했다. (5절, 히11:19) 이 믿음은 보통 믿음은 아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평범한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비범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 가신다. 그것이 은혜이고, 사랑이다. 세상의 복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이용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삶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사모하며 나를 낮추고 죽이고 순종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의 삶을 살기 원한다. 그 믿음이 내게 없기에 오늘도 기도로 주의 도우심을 구하고 은혜를 구하자.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우소서. 은혜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