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6
때로 사람들의 간증이 불편한 이유는 그 사람의 하나님과 나의 하나님이 다른 것 같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기도는 너무 응답을 잘 한다는 것 때문에 실족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다윗도 실족할 만한 위기의 시기를 겪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라는 기도가 오히려 나에게 위로가 된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근심하는 이유는 자신이 낙심하여 기도를 포기하게 되고, 원수인 사단이 기뻐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다. 나의 두려움도 그런 것이 아닐까..... 도움말에 '대적이 진정 바라는 것은 시인이 낙담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시 일어나 나아가는 것' 이다. 일어나 나아가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면서 믿음의 담대함이 생기고, 앞의 것만 바라보고 절절 매는 자가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도 생기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간다. 그것이 기도인것 같다. 낙심하고 쓰러져도 또 일어나 걸어갈 힘을 공급받는 곳이 '기도' 라는 하나님과 내가 만나는 은밀한 장소이다. 기다려야 하기에 아무 말씀이 없으셔도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 떡과 물을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곳에 있음을 믿는다. 나의 눈을 밝히시고 주의 의지할 때 기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바라 봅니다. 주님, 내게 은덕을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