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32:24-33

기도할 때 하나님이 대답하시고 이적을 보았다면 평생 겸손하게 하나님만 바라볼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하나님의 음성 듣기 원하고 이적을 보기 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스라엘 왕들을 보면 오히려 형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 교만하고 하나님을 떠난다. 외적인 부와 형통은 내면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어도 해결하지 않으시는 것은 문제 해결이 진정한 해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문제 때문에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내면의 거룩함을 만들어 가게 하신다. 히스기야 에게 바벨론 방백들이 왔을 때 하나님이 하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고자 시험하셨다고 한다. 내가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힘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요 도우심이 있기 때문이다. 형통할 때에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난이 찾아와야 나를 돌아 본다. 나의 본래 모습은 고난이 와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교회 예배가 중단되자, 내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이렇게 예배가 중단되겠구나' 하는 마지막 때에 대한 실제적인 모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나의 실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힘든 기간이 있었지만, 나의 모습을 보게 하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기도 시간도 늘어나고 말씀을 더 읽게되니 말이다. 나의 실체를 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낙심하고 두려워 쓰러지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께 손 내밀기를 기다리시며 나의 곁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역대기는 '하나님 만이 해답이다'고 계속해서 알려 주신다. 살아 가는 동안 끊임없이 두려워 하고 낙심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계속 있겠지만, 주 안에 거할 때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 은혜를 맛본 자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 나 홀로 있을 때의 고통과 두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을 뉘우치고 돌이킬 수 있었던 힘도 그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고, 환경과 상황에 상관없이 주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승리의 삶 살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주님,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